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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과 인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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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과 인플레이션
  • 한기태 애널리스트 / NH투자증권
  • 승인 2021.05.1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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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MI와 수출 증가율 고점은 2분기
코로나19 이후의 경기회복은 재고 재축적 사이클(Re-Stocking Cycle) 성격이 강하다. 이연소비를 바탕으로 기업들이 생산을 늘리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동안, 재고 재축적 사이클은 평균 18개월 진행됐는데, 이를 대입하면 이번 Re-Stocking Cycle 고점은 올해 2분기가 된다.

그런데 이번 Re-Stocking Cycle은 폭이 크고 기간이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기업들이 충분한 재고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 소매업체들이 재고를 쌓고 있지만, 매출이 더 빠르게 늘어서 현재 재고율(매출 대비 재고 비율)은 123%로 역사적 평균(143%)에 못 미친다. 여름에 나타날 디스인플레이션이 디플레이션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 물가 상승의 모멘텀 효과(전월대비 상승률) 높아짐
2017년과 비교할 때 2020년 4분기 이후 지금까지 진행된 리플레이션에는 기저효과 영향이 적다. 기저효과를 제외한 모멘텀효과로 볼 수 있는 전월대비 기준으로 보면, 당시보다 지금의 미국 CPI 상승률 폭이 더 높다. CPI 상승률이 올라간 것은 Pent-Up Demand(이연수요)를 반영한 것인데 국가 간의 이동이 재개되기 전까지는 이연수요가 남아 있을 것이다. 

작년 4월이나 올해 1월과 달리, 올해 3월부터는 미국인이 정부에서 받은 보조금을 주식 매입보다는 실물경제에서 쓰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글로벌 전체로 보더라도 아직 산업생산이 소매판매 회복 속도를 못 따라 잡았다. 현재 선진국은 자국내 이동만 재개되고 있지만, 집단 면역을 달성한 선진국 간에 먼저 해외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실제로 국가별 GDP 가중치를 반영한 글로벌 코로나19 확진자는 연초 대비 45%로 떨어졌다. 향후 선진국 사람들의 이동이 재개되면 항공유 소비 확대, 서비스업 고용 개선이 나타날 것이다.

# 지난 10년 동안 세 차례 경우와 비교할 때, 사이클의 진폭이 큼
요컨대, 서비스 부문에 쓰일 잉여저축이 대기 중인 가운데 재고율이 낮기 때문에 재고 재축적 사이클의 기간이 과거보다 길어질 것이다. 이는 운임료에 잘 나타난다. 최근 10년간 컨테이너 운임료는 2013년 여름, 2016년, 2019년 4분기 세 차례 올랐는데 이는 Re-Stocking Cycle과 일치한다. 여기에 1년 선행하는 글로벌 M1 증가율의 궤적을 감안할 때 재고 재축적 사이클은 연말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그리고 그 폭이 과거 사이클과 단순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따라서 2011년이나 2018년처럼 경제지표 모멘텀이 고점을 통과한 이후 디플레이션 국면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2010년처럼 리플레이션 국면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장기적으로 보면 설비투자를 늘릴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반도체를 제외한 대부분 산업의 생산능력(Capacity)은 10년간 정체된 상태다. 조선의 경우 2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간 상태다. 코로나19가 끝나지 않았고 실업률이 높은 상황에서 당장 기업이 확신을 갖고 대규모 증설을 하기는 어렵지만, 제품판매 가격 상승에 따라 일부 투자 확대가 예상된다.

# 수요 움직임보다 뒤늦게 움직이는 설비투자
설비투자에 선행하는 글로벌 자본재(반도체장비, 전기장비, 공작기계 등) 주문은 지난 10년 간의 박스권을 넘어섰다. 기업들은 수요 개선 후에 설비투자를 늘렸다가, 수요가 둔화되는 시점에는 이미 계획된 프로젝트를 폐기할 수 없기 때문에 계속 투자를 집행하면서 후반부에는 관련 제품의 가격이 떨어진다. 

중국 인프라투자에 2~3년 후행해 움직인 광산개발투자가 대표 사례다. 그런데 이런 사이클은 공급보다 수요 변수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초기에는 리플레이션, 후기에는 디플레이션을 만들어내지 스태그플레이션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바이든 정부는 장기적으로 경기부양 재정지출을 늘린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런 기조에서는 기업들도 점차 수요 개선을 확신하고 투자에 나설 수 있다. 양적완화가 처음 시작될 때 10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은 드물었지만 그렇게 됐다. 2020년에 시작된 재정확대가 향후 10년 이상 장기화될 수 있다.

# 큰 정부를 지향한 기간에 투자가 늘고 리플레이션 경험
재정 확대가 장기화되면 유형투자와 관련된 상품 가격이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국은 1940년대 중반~1960년대 중반 GDP 대비 정부투자 비율이 상승했다. 이 기간은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완만히 올라간 기간과 일치한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코로나19 이전까지 GDP 대비 정부투자 비중은 이전보다 낮은 수준에서 맴돌았다. 기본적으로 '작은 정부'를 지향한 셈이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애당초 금융위기는 가계의 무리한 레버리지 확대 때문에 발생했기 때문에 정부가 가계를 지원한다는 계획이 정치적으로 공감대를 얻지 못했고 정책은 금융안정과 재정건전성 관리에 초점을 뒀다. 의회 동의가 필요 없는 통화정책은 완화적 기조를 유지했지만, 재정정책은 긴축을 유지했다. 그 결과, 유동성은 늘어났지만 정작 사람들의 주머니에 들어간 돈은 없었기 때문에 실물경제의 인플레이션이 온 것이 아니라 자산시장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반면 코로나19는 도덕적 해이와 전혀 무관한 사안이기 때문에 정책 방향이 금융위기 이후와는 다르게 전개될 수 있다.

# 큰 정부가 출현한 시기에 산업용 원자재 가격 상승
큰 정부가 출현한 1950~1960년대의 주된 특징은 점진적인 물가상승률 확대(리플레이션), 경제활동참가율 확대, 소득불균형 완화를 들 수 있다. 

첫째, 큰 정부가 지속되면 자산시장 인플레이션보다 실물부문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확률이 높다. 미국 물가 상승률은 통화량(M2)보다 사회보장지출 증가율과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다. 소비성향이 높은 중산층 소득이 늘면 이들의 내구재 소비가 늘면서 산업용 원자재 수요가 늘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처럼 돈이 풀려도 금융시장 안에서 맴돌기만 하면 인플레이션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현재 미국인의 자동차 구입금액에서 중고차 비중은 25%로 높은 편인데 중하위 계층 사람들의 소득이 늘면 중고차를 신차로 바꿀 확률이 높아진다. 기왕 바꾸는 것을 전기차를 택할 수도 있다. 이처럼 큰 정부가 출현하면 실물부문 관련 자산의 가격은 상승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런 흐름은 공급 측면의 단기간내 이슈가 아니라 수요 측면의 장기적인 변화다.

# 중산층이 두터워질 때 수요 측면의 물가상승률이 완만하게 상승
둘째, 산업용 원자재가 강세를 보인 1960년대는 미국 경제활동참가율이 상승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고용시장에 유입되면서 소비성향이 올랐고 이는 원자재 수요를 자극했다. 

2000년대에는 미국의 경제활동참가율은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산업용 원자재가 강세를 보였는데, 이 시기는 중국의 구인 건수가 늘어난 것과 맞물린다. Jeff Currie는 1960년대가 미국의 경제활동참가율과 중산층 확대가 산업용 원자재 강세를 이끌었다면, 2000년대에는 중국이라는 커다란 저소득 계층이 중산층으로 편입되면서 원자재 수요가 늘었다고 지적한다.

반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경제활동참가율과 중국의 구인 건수가 함께 하락했다. 중산층이 위축되고 유동성이 금융시장 안에서만 머물 때에는 실물경제 디플레이션과 자산시장 인플레이션이 나타났다. 경제활동참가율이 떨어지기 시작한 1990년대는 미국 제조업이 약화되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린다. 반면, 현재 미국은 임금과 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큰 제조업과 건설업 고용 회복 속도가 빠르고, 경제활동인구가 완만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 큰 정부, 리플레이션, 소득 분배가 비슷하게 겹침
셋째, 소득분배가 개선되었다. 디스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시대를 거치면서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소득분배가 악화되었다. 두 시대는 실물경제보다 자산시장이 호황을 누린 기간이다. 반면 큰 정부가 출현한 리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 시대에는 소득분배가 개선되었다. 

코로나19 이후 양극화는 더욱 심화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분배 정책을 강화하는 명분이 될 수 있다. 재정확대와 증세 계획은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제시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변화가 단기적으로 눈에 띄는 결과를 내기는 어렵지만 4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정책 기조가 변화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직 부족하지만 미국인의 고용 및 소득 증가에 대한 기대감도 개선되는 중이다. 디플레이션에 빠져든 지 20년이 지나서 아베노믹스가 시행된 일본은 이미 20~30대 계층이 디플레이션에 익숙해진 터라 사람들이 임금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 자체를 하지 않았지만 미국의 경우는 최소한 일본과는 달라 보인다.

# 비정치적 전문가 집단이지만, 중앙은행 역시 정치적 결정에 영향 받음
큰 정부가 출현해도 오히려 디플레이션이 심화된 사례로 1990년대 일본이 꼽힌다. 그런데 중앙은행도 큰 범위에서 정부라고 본다면 일본의 1990년대는 큰 정부가 출현한 시기가 아니었다. 

1990년대~2000년대 일본의 특징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엇박자를 반복했다는 데 있다. 정부와 중앙은행을 합쳐서 보면 일본은 1990년대에 큰 정부를 만든 것이 아니라 금융안정에 초점을 둔 관리 위주의 정부를 만들었다. 반면, 현재 미국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모두 확장적이다. 2008년 미국의 대응이 1990년대 일본보다 나았는데 2020년은 더 나아졌다. 이 대목에서 연준의 대응이 예상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현재 시장 컨센서스는 연준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이 2022년 1분기에 시작돼 매 회의마다 매입 규모를 150억 달러씩 줄일 것으로 보고 있는데 예상보다 테이퍼링 강도가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2014년처럼 테이퍼링을 한 해에 끝내기 보다는 국채발행 강도에 따라 유동적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위원들 간에 이견이 있어도 의장의 의견을 우선존중하는 FOMC의 분위기를 감안해도 그렇다.

# 미국-중국 경쟁과 환경규제가 투자를 가속화
큰 정부의 출현과 더불어 향후 장기화될 흐름은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다. 그런데, 이 경쟁은 트럼프 재임 기간과는 성격이 다르다. 당시 경쟁은 관세율을 올리는 무역전쟁이었는데 이는 제로섬 게임이다. 

그런데 바이든은 중국과의 경쟁을 장기전으로 보는데 이 과정에서 파괴와 정체가 아니라 투자와 혁신이 발생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1961년에 시작된 미국의 아폴로 계획은 소련과 우주 경쟁에서 이기려고 시작됐지만 이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정수기, 헤드셋, 심장박동기 등이 발명되었다. 경제 분석의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예상이 쉽지 않지만, 미국-중국의 극한 경쟁이 예정된 가운데 코로나19 이후 백신 개발이 예상치 못한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세계화가 후퇴했던 1920년대에 무선전화기, 냉동식품, 인슐린 등이 발명된 것은 1차 세계대전 당시의 연구가 영향을 미쳤고, 세계화가 정체된 1950년대에 개인용 컴퓨터, 태양전지, 블랙박스, 바코드 등이 발명된 것은 냉전이 영향을 미쳤다. 향후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세계화가 정체될 수 있으나 기술 혁신은 오히려 가속화될 수 있다. 미국의 1인당 생산성 증가율이 가장 높았던 기간은 1950년대~1960년대 중반 리플레이션 국면인데 이 때는 미국-소련의 생산성 경쟁이 극대화된 시기다. 가동률이 낮은 상황에서 투자를 늘어날 지가 의문일 수 있지만, 일단 제조업 가동 률은 반등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시대적 변화가 있을 때에는 낮은 가동률에서도 투자가 늘어난다는 점이다. 가동률은 생산(Production)을 생산능력(Capacity)으로 나눈 값인데 기존에 분모에 잡힌 생산능력이 필요 없는 설비로 남고 새로 만들어야 하는 설비가 있다면 가동률은 의미가 희석된다. 대표적으로 IT를 중심으로 설비투자가 급증하기 시작한 1990년대 초반 미국의 제조업 가동률은 80% 미만이었다.

# 돌아온 유형투자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 소득분배와 친환경을 요구하는 시대정신으로 새로운 설비가 필요하다면 가동률이 낮은 상태에서도 투자는 증가한다. 대표적으로 엑슨모빌이 추진하는 탄소포집 관련 투자가 여기에 해당된다. 생산시설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땅 속에 저장하는 기술인데 이런 투자는 공급과잉 문제 와 무관하다.

이는 유형자산(Tangible Asset) 투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된다. 정유, 선박, 철강, 건설 등과 함께 하는 유형투자는 구경제(Old Economy)라는 이미지에 갇혀 있다. 그런데 친환경 선박을 발주하건, 오염물이 적은 건축물을 짓건 이 모든 것들은 눈에 보이는 발주와 제조, 건설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들이다. 엑슨모빌 사례에서 보듯이 과거 환경오염을 일으킨 Old Economy 업종의 기업들이 환경오염을 해결하는 기술을 들고 나오고 있다. 또한, 미국이 중국과의 대결을 장기전으로 생각한다면 그동안 방치된 인프라 시설을 재정비해야 한다. 이를 주도하는 것은 유형투자와 구경제(Old Economy)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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