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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투자라는 게임 '원숭이와 펀드 매니저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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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투자라는 게임 '원숭이와 펀드 매니저의 대결'
  • 박승영 투자전략 애널리스트 / 한화투자증권
  • 승인 2021.01.05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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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턴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버튼 G 맬킬은 1973년 저술한 ‘Random Walk Down Wall Street’에서 효율적 시장 가설을 주창하기 위해 이런 예시를 들었다.

“눈을 가린 원숭이가 신문의 금융 면을 펼쳐놓고 다트(dart)를 던진다. 다트가 꽂힌 주식들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교육 받고 훈련된 펀드 매니저가 신중하게 주식을 고른다. 선별된 주식들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두 포트폴리오의 수익률은 별 차이 없을 것이다. 시장에 정보가 이미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이 일화는 종종 금융시장 전문가들을 조롱할 때 인용된다. 금융시장은 효율적이어서 펀드 매니저들이 낼 수 있는 알파는 없다는 것이다. 이 사례는 유명하지만 뒷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정확하게는 전체 이야기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Random Walk Down Wall Street’을 검증해 보기로 했다. 1988년부터 2002년까지 142회 동안 실험을 진행했다. 원숭이는 없었고 눈을 가리지도 않았다. 투자 가능한 종목들을 정해 놓고 WSJ 사무실 구석에 다트를 던져 선택된 주식들과 펀드 매니저 4명이 고른 주식들, 아마추어 투자자 4명이 고른 주식들의 수익률을 비교
했다.

펀드 매니저들의 6개월 평균 수익률은 10.2%였고 다트 던지기로 선택된 주식들의 수익률은 3.5%였다. 같은 기간 다우지수의 수익률은 5.6%였다. 승률을 비교하면 다트 던지기와 펀드 매니저는 38.7% 대 61.3%로 펀드매니저가 높았고, 다우지수와 펀드 매니저는 46.5% 대 53.5%로 펀드 매니저의 승률이높았다.

이 실험 결과는 투자의 세계에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펀드 매니저의 전문성은 단기간에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긴 시간 투자를 반복하면 초과 성과가 증명된다. 둘째, 잘 교육받고 훈련된 펀드 매니저는 장기간 벤치마크를 상회하는 수익률을 올릴수 있다. 셋째, 다우지수처럼 특정 조건에 부합하는 종목들을 선정해 폴트폴리오를 구성하면 시장을 상회하는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

이 실험 역시 1988년부터 2002년이라는 특정 기간의 수익률을 비교한 것이라는 점에서한계가 있고 이 기간의 초과 성과가 이후의 성과를 보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펀드 매니저의 실력을 측정하기에 14년이라는 긴 기간이 단 몇 차례의 실험 보다는 낫다.

마이클 모부신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저서 ‘실력과 운의 성공 방정식’에서 게임의 성공을 실력과 운으로 분해했다. 모부신은 실력의 비중이 높은 게임으로 체스와 테니스를 들었고 운의 비중이 높은 게임으로 슬롯머신과 다트 던지기를 들었다. 모든 게임은 체스와 다트 사이에 위치한다.

실력과 운의 비중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승률의 분포다. 최상위와 최하위의 승률격차가 크고 평평한 분포를 보인다면 실력의 비중이 높은 게임이다. 각각의 실력과 정확히 일치하는 승률에 한 명씩 분포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승률 격차가 작고 종형분포를 보인다면 운의 비중이 높은 게임이다. 실력에 차이가 없으면 승률은 50% 부근에 몰리게 돼있다.

테니스와 메이저리그 야구의 선수별, 팀별 승률 분포를 백분위로 변환해 본다면, 야구가 테니스보다 중앙 값에 더 많이 분포한다. 야구가 테니스보다 운에 더 좌우된다는 의미다.

운의 비중이 높은 게임이어도 환경을 조절하면 승률을 높일수 있다. 메이저리그 야구 30개 팀 가운데 홈 경기 승률이 원정 경기 승률보다 높은 팀의 수를 센 것이다. 2007년 이후 평균 25팀이 원정 경기보다 홈에서 승률이 높았다. 2007년과 2008년에는 한 팀을 제외한 29개 팀의 홈 승률이 원정 승률보다 높았다. 2007년 최하위 팀이었던 템파베이의 홈 승률은 0.461로 원정 승률 0.347보다 0.114 높았다.

이는 야구 팀들이 홈 경기에 유리하게 팀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경기의 절반을 홈에서 치르므로 홈 구장의 특성에 맞는 선수들을 뽑으면 승리의 사전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외야가 넓은 팀은 발 빠른 외야수를 보유하는 것이, 펜스까지의 거리가 짧은 팀은 거포를 보유하는 것이 유리하다. 좌타자 베이브 루스는 우측 펜스가 짧은 양키 스타디움 덕에 위대한 타자가 될 수 있었다. 파울 존이 넓은 다저스타디움을 쓰는 LA 다저스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좋은 투수를 찾아다닌다.

테니스에서 조건이 실력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는 ‘흙신’ 라파엘 나달의 통산 기록이다. 탑스핀을 건 포핸드를 주무기로 사용하는 나달은 공이 잘 튀는 클레이 코트(흙바닥)에서 압도적으로 승률이 높다. 나달의 2001년 성인 테니스 데뷔 이후 승률을 살펴보면 전체 83.1%, 클레이 코트 92.0%로 클레이 코트에서 8.9%p 높다. 클레이 코트는 운도 실력도 아니다. 실력이 잘 발휘되는 조건에 대한 것이다.

게임에서 이기고 싶다면 게임의 조건을 파악하고 주어진 조건에서 최고의 결과를 낼 수있는 플레이어들을 선별해야 한다. 몇 번은 질 수 있어도 게임이 계속되면 실력이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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